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김소월 시의 문학사적 성과와 의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통된 결론을 이끌어 낸 것 같다. 1920년대 외국 문학사조의 무분별한 혼류 속에서 전통 민요의 가락과 정서를 솜씨 있게 변용해 상당한 수준의 정제된 서정시를 창조한 것이 바로 소월의 문학사적 성과다. 그의 시는 주로 임의 상실에서 오는 간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사랑의 감정을 담아냈는데, 그러한 정서의 흐름은 일제 강점 상황에 놓인 당대 사람들의 내면적 공허감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이 지닌 상실의 아픔을 위무하는 심리적 효용성도 지니고 있다. 김소월의 시는 당대의 사람들에게만 공감을 준 것이 아니라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일으키는 정서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서 오늘날까지 국민 애송시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김소월의 시는 1920년대의 시대 공간 속에서 당대인들의 내면에 동화될 수 있는 시를 창작함으로써 슬픔으로 슬픔을 위무하는 일종의 정화의 기능을 수행했다. 그 시가 현실적 고통을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했으나 삶의 고통이 우리 앞에 현존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그 고통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 줌으로써 현실의 비애와 고통에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행로를 마련해 주었다. 김소월은 근대시의 초석조차 놓이지 않은 문화적 불모지 속에서 우리 서정 민요의 도움을 받아 오로지 혼자서 이 일을 했다. 그러므로 1920년대 순수 서정시 창조에 기여한 김소월의 공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200자평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서정시인 김소월.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인 ‘한’을 전통적인 민요조의 리듬으로 풀어내 한국 현대시사에 일획을 그었다. 시인과 평론가 100명이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맨 앞을 김소월이 차지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를 앞에 두면 이러저러한 수식어도 다 빛을 잃는다. 초판본 그대로의 <진달래꽃>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 자락이 저릿해진다. 특별한 시어나 화려한 기교보다 강한 소월의 진정한 매력이다.
지은이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은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
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
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
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엮은이
이숭원(李崇源)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정지용 시 연구>(1980)로 석사 학위를, <한국 근대시의 자연표상 연구>(1987)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충남대학교와 한림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1999), ≪초록의 시학을 위하여≫(2000), ≪폐허 속의 축복≫(2004), ≪감성의 파문≫(2006),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2006), ≪세속의 성전≫(2007), ≪백석을 만나다≫(2008), ≪영랑을 만나다≫(2009), ≪시 속으로≫(2011)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원본 정지용 시집≫(2003)과 ≪원본 백석 시집≫(2006)의 주해를 달았다. 시와시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시집 ≪진달내꼿≫
먼 後日
풀 따기
바다
山 우헤
옛니야기
님의 노래
님의 말슴
님에게
밤
꿈꾼 그 옛날
꿈으로 오는 한 사람
紫朱 구름
두 사람
닭 소래
못 니저
예전엔 밋처 몰낫섯요
자나 깨나 안즈나 서나
해가 山마루에 저므러도
꿈
하눌 끗
개아미
제비
부헝새
萬里城
樹芽
담배
父母
후살이
니젓든 맘
봄비
몹쓸 꿈
맛나려는 心思
꿈
님과 벗
紙鳶
오시는 눈
樂天
바람과 봄
눈
깁고 깁픈 언약
붉은 潮水
千里萬里
生과 死
漁人
귀뚜람이
不運에 우는 그대여
바다가 變하야 뽕나무밧 된다고
맘에 잇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훗길
夫婦
나의 집
구름
녀름의 달밤
오는 봄
들도리
바리운 몸
엄숙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잇섯더면 70
밧고랑 우헤서
저녁때
合掌
黙念
悅樂
무덤
비난수하는 맘
찬 저녁
招魂
길
개여울
가는 길
往十里
鴛鴦枕
無心
山
진달내꼿
朔州 龜城
널
春香과 李 道令
접동새
山有花
꿈길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하다못해 죽어 달내가 올나
나는 세상모르고 사랏노라
金잔듸
첫 치마
달마지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시집 이외의 작품
나무리벌 노래
녯 님을 따라가다가 꿈 깨여 歎息함이라
西道餘韻-옷과 밥과 自由
제이, 엠, 에쓰
三水甲山-次岸曙三水甲山韻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해가 山마루에 저므러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믑니다.
해가 山마루에 올나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츰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저도 하눌이 문허저도
내게 두고는 끗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잇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갓치 당신한테로 가우리다.
오오, 나의 愛人이엇든 당신이어.
●밤마다 밤마다
온 하로밤!
싸핫다 허럿다
긴 萬里城!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 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내꼿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거름거름
노힌 그 꼿츨
삽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니우리다